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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부터 “징용 배상땐 征韓”… 아베 ‘경제제재 칼’ 오래 갈았다

입력 | 2019-07-09 03:00:00

[日 경제보복 파문]日주간지 보도서 이미 예견된 보복




일본의 시사 주간지 ‘슈칸분슌’이 2013년 11월 14일 보도한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라는 제목의 기사.

“삼성도 하루 만에 괴멸할 것이다.”

2013년 11월 14일, 일본의 유력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금융계 인사의 이 같은 주장을 실었다. 이 인사는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강제 징수당하면 대항 조치는 금융 제재밖에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기사는 또 아베 신조 총리가 측근에게 “중국은 싫은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협상조차 할 수 없는 어리석은 국가일 뿐”이라고 했다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아베 총리 측근들이 새로운 정한(征韓·한국 정벌)론을 제기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미 총리 측근이 한국에 대한 비공식적인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 경제계에서는 일본 기업 철수론도 나온다고도 보도했다.

8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이 수출 규제를 앞세워 경제 보복을 감행하자 6년 전 슈칸분슌 기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기사는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 판결 취지에 따라 이듬해 7월 서울고법이 일본 기업에 대해 ‘징용 피해자에게 직접 배상하라’고 선고했고, 위안부 합의 문제로 한일 관계는 냉각된 상태에서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당시 일본이 소재 강국이란 지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일본이 차마 공급 중단 카드를 꺼내진 못할 것이란 의견이 더 컸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그해 ‘일본은 왜 소재강국이 되었나’라는 보고서를 내고 “일본산 소재부품이 없으면 당장 전 세계 전자산업이 멈춰 서는 상황까지도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징용 배상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여러 경로로 일본의 경제 제재 강행 기류가 감지돼 정부로도 경고가 들어간 걸로 안다”며 “아베 정부가 오랫동안 경제 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꺼낼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을 살펴보면 궁극적으로 삼성을 타깃으로 한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포토레지스트 중 극자외선(EUV)용 레지스트는 삼성의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계획’을 위한 핵심 소재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폴더블폰, 갤럭시10 등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포토레지스트는 EUV 등 양산 초기 단계용 규제가 더 뼈아프다. 일본이 수출 규제로 입게 될 자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징적인 규제 임팩트를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경고음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기업은 뭘 했냐”란 반응이 나오자 기업들은 그동안 최선을 다해 국산화 노력을 해왔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SK그룹은 2014년 통합지주사 출범 당시 5대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반도체 소재 산업을 제시하기도 했다. 2016년 에칭가스 업체 OCI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2017년에는 LG로부터 반도체 웨이퍼 기업 실트론을 사왔다.

하지만 단기간에 소재강국 일본의 벽을 넘어서긴 어려웠다는 게 업계의 호소다.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려면 어떤 경우 30∼40년은 걸린다는 것이다. NHK가 새로운 수출 규제 품목이라고 제기한 탄소섬유의 경우 일본 도레이가 1970년대에 개발을 시작한 뒤 보잉 항공기 등에 널리 쓰이기까지 약 40년이 걸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결국 외교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국산화하는 건 너무 어렵고, 국제 분업체계를 활용하지 않고 우리가 다 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외교가 답”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지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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