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3천억대 금융사기] '가장납입.株價조작 전모'

검찰이 30일 적발한 1조3천억원대 주금가장납입 사건은 사채업자와 은행 직원, 일부기업 등이 짜고 벌여온 '검은돈놀이와 사기행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금융시장의 주역인 시중은행이 사건의 배후 핵심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3각고리의 기본구조는 사채업자들이 회사를 설립하려는 사람이나 유상증자를 원하는 기업체 대표 및 대주주 등의 부탁을 받고 증자대금을 납입한 것처럼 돈을 입금시켰다가 다시 인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용호씨 등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자본금과 주식 수를 마음대로 늘려 투자를 끌어들이고 이를 토대로 주가조작이나 각종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 ◆ 가장납입으로 대형 금융사기 반재봉씨 등 명동지역 사채업자 13명이 지난 1년간 가장납입을 통해 세워준 회사는 모두 1만3백37개. 작년 한햇동안 서울에 설립된 회사(1만6천5백95개)의 60%를 넘는 수준이다. 반씨 등은 '가장납입으로 회사를 세우고 싶다'는 업자의 의뢰를 받고 5천만∼2억원 정도를 빌려줬다. 업자들은 이 돈을 근거로 은행에서 '주식자본금이 들어왔다'는 증명서를 받아 등기소에서 법인설립 등기절차를 밟아 하루 이틀 만에 회사를 세웠다. 사채업자들이 빌려준 돈은 원래 회사 자본금으로 쓰여야 하지만 1억원당 7만원 가량 수수료와 함께 곧바로 사채업자에게 돌아갔다. 업자들은 이렇게 자본금이 없는 '껍데기' 회사의 영업이 잘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은행에서 당좌거래를 튼 뒤 거래처에서 물건을 납품받고 대금은 어음으로 지급했다. 곧 회사 문을 닫고 달아나 어음은 휴지가 됐고 거래처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 주가조작 자금줄 역할 검찰은 이용호 이성용 최병호 김영준씨 등 전문 작전세력이 대형 주가조작을 벌일 때도 반씨가 자금줄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반씨는 작년 6월 이용호씨가 레이디가구를 인수할 때 1억8천만원을 받고 유상증자대금 3백억원을 가장납입해 준 것을 비롯 GPS 유니씨엔티 세림아이텍 등의 주가를 조작할 때도 수백억원을 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반씨가 작전세력에 자금을 대주는 것은 작전마다 두 차례씩. 먼저 작전세력이 자본금 규모가 작은 상장.등록법인을 인수한 뒤 유상증자할 때 이 대금을 가장 납입해 줬다. 회사에 실제 돈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외부에는 '뉴 머니'가 들어온 것처럼 공시되는 만큼 일반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반씨는 이때 작전세력들이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유상증자로 생긴 주식을 담보로 또 다시 수백억원의 작전자금을 빌려줬다. 검찰은 반씨가 텔타정보통신 주가조작 때는 직접 작전에 가담, 이 회사주식 1백40만주를 팔아 거액을 챙겼다고 밝혔다. ◆ 은행이 사건의 핵심 배후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은행이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은행은 가장납입을 알면서도 반씨와 짜고 주금납입증명서를 내줬다. 가장납입을 통한 상장.등록기업 유상증자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불법행위는 훨씬 심각했다. 회사에 유상증자대금이 들어올 때 채권자들이 가압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은행은 오후 근무가 끝난 뒤 증자대금을 입금했다가 아침 근무시작 전에 빼냈다. 우리은행은 이같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반씨의 돈 2백억원을 예금이자를 안 주는 별단예금계좌에 항상 예치한 뒤 대출 등에 사용, 1년에 10억원이 넘는 이익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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